윤은자 개인전 [바람의 언어 Venti Logos]

2008.10.15.~2008.10.21.

■ 전시명 : “바람의 언어 (Venti Logos) 展”

■ 전시일정 : 2008년 10월 15일 ~ 2008년 10월 21일

■ 전시장소: 사진전문 갤러리 “gallery NoW "

■ 참여 작가: 윤은자


허공의 메아리를 찾아서

우리는 어떤 이미지가 예술적이라고 할 때, 그 이미지는 즉각적으로 모두에게 의미 깊은 메시지를 던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원래 순수예술로서의 이미지는 대중의 눈높이에서 통용되는 공통된 정보가 아니라 멀리 산 위에 피어나는 연기와 같이 오로지 그 이미지의 어떤 원인적인 것을 암시하는 신호로만 나타난다. 다시 말해 예술로서의 이미지는 근본적으로 언술로 재현 불가능한 그러나 반드시 그것을 야기한 발생적인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발생적인 무엇이 대부분의 경우 문화의 영역에서 이해되는 앎(상징이나 코드)이 아니라 작가 자신도 분명히 알 수 없는 뜬 구름 같은 느낌이나 조짐(impression)이라는 사실이다. 예술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 그 자체의 조형적이고 심미적인 형태가 아니라 대상과 작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어떤 강렬한 감성적인 교감(交感)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언제나 안개 자욱한 길을 걷는 방랑자로 비유되는데, 이때 그들을 인도하는 유일한 지팡이는 안개 속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처럼 그들 각자가 포착하는 직감(intuition)이다.

사진예술은 바로 이러한 지시적인 구조를 가지는 가장 대표적인 모델이 된다. 언뜻 보기에 사진은 현실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촬영자의 관점에서 사진으로 재현하는 행위 즉 “사진적 행위(acte photographique)”는 언제나 대상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거나 그 상징적인 메시지만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사진은 심리적 재현 장치로 예견치 않은 대상으로부터 추상적이고 심정적인 것을 표현하는데 그 본질적인 의도가 있다. 이럴 경우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사진 이미지는 상황 그 자체의 설명이 아니라, 어떤 단편적인 사물로 위장하면서 최초 포착한 형이상학적인 무엇(생성 gen?se)을 암시한다.

그래서 흔히 사진은 극히 정제된 일종의 무언극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연극과 사진은 모두 직접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회적인 방식 특히 관객 스스로의 상황적 재구성을 유도하면서 궁극적으로 말로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무엇 즉 특이한 무엇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진은 비록 이차원적인 재현 매체이지만 근본적으로 연극적인 지시-행위(photo-index)로서 행위의 단편으로 나타난 퍼포먼스가 된다. 바로 여기에 사진이 다른 재현 매체와 구별되는 가장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기 보여 진 사진작가 윤은자의 허공의 천들은 단순히 무엇을 보여주는 사진이 아니라 엄밀히 말해 사진으로 실행하는 사진-연극 다시 말해 결코 시각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어떤 무엇을 은닉한 일종의 사진-포퍼먼스로 간주된다. 주지하다시피 포퍼먼스의 근본적인 의도는 관객과의 소통이다. 그러나 이때의 소통은 더 이상 언어학적 기호로 치환할 수 없는 상황적인 재구성을 통해서인데, 사진은 이러한 상황적인 증거로서 순간의 단면을 자르는 “동결 효과”와 “유물효과”를 수행한다.

작가의 사진들은 우선 극도로 정제되고 치밀히 계획된 퍼포먼스의 흔적들이다. 작가는 가능한 우리와 친숙한 모시, 광목, 비단, 양단 등을 허공을 향해 던진다. 그러나 이러한 허공의 외침은 시지프의 불가능한 도전과 같이 끝없이 반복된다. 그 이유에 관해 작가는 “허공에 만들어지는 천의 형상은 바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왜냐하면 천의 무게는 바람이 만드는 형상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게다가 촬영현장에서 바람의 세기에 따라 천의 종류와 두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한다. 예견치 못한 또 다른 형상을 포착하기 위해 작가는 치밀히 계산된 촬영 아래 순간포착의 그 어떤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다.

바람과 천 그리고 색과 공간이 만드는 수많은 허공의 형상들은 첫 눈에 어디서 많이 본 우리 고유의 것들 말하자면 하얀 소복, 색동저고리, 솜이불, 댕기 등 사라져 가는 우리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작가는 허공에 굽이치는 형상들은 한국의 전통 춤인 승무에서 하늘을 향해 순간적으로 길게 솟구치는 장삼자락에서 연유되었다고 말한다. 장심자락의 미묘한 순간포착, 그것은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또 다른 뉘앙스를 암시하는 결정적 찰라-순간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의도적으로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로서 색동과 황토 그리고 단층의 오방색은 더욱 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고유의 한(恨)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 이러한 형상들은 단순히 승무의 춤사위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형상들은 관객의 모든 상상력을 무력화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단번에 상징적으로 “한국의 전통”이라는 모호한 관념 이외 그 어떤 구체적인 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컨대 초저녁 어색한 인공조명으로 희끄무레한 하늘에 솟구친 야광 천들은 갑자기 보는 이로 하여금 온 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면서 전혀 예견치 못한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공포를 가져다준다. 신들린 무당이 허공에 던지는 광기의 오색 색동 천, 남편의 마지막 황천길에 흐느끼는 어느 과부의 곡소리, 한 많은 생을 살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하관에 한 줌 재가 되어 허공에 올라가는 마지막 저고리와 버선자락 ... 현실이 아닌 있음직한 장면들 그러나 지울 수 없는 기억의 장면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작가는 사진의 공간구성에서 관객의 긴장을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동과 부동의 조화, 인공과 자연의 긴장,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의 혼용, 그리고 순간과 지속의 대립 구조를 설정하고 있다. 특별히 허공에 던져진 상부의 주제와 하부의 배경 사이에서 드러나는 의미의 병치는 전체적인 작품의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예컨대 큰 공간을 차지하는 하늘 아래 배경으로 나타나는 산 능선과 청 보리밭, 한강의 밤, 예술의 전당, 전통 초가집, 남대문, 경복궁, 서울역, 민통선 등은 단순히 한국의 자연과 전통이라는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관객 각자의 경우로 재구성되고 재해석되는 일종의 제유법적인 효과를 가진다.

이러한 문맥에서 볼 때 바람과 하늘, 색과 선이 만드는 허공의 이미지들은 단순히 한국의 자연과 전통 미를 예찬하는 과시적인 웅변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은밀한 욕구와 기억이 무의식으로부터 의식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위장된 기억의 단편들 즉 작가 자신의 무의식에 부유하는 과거 기억의 인상들이다. 이때 사진 이미지는 작가 자신의 경험담을 쓰듯이 적어도 자신의 체험이 투영된 자기반영(自己反影) 혹은 삶의 앙금으로부터 불쑥 솟아오르는 아쉬움과 욕구의 지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주관적인 인상은 결코 자신의 헛소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어두운 방을 밝게 환히 비추는 빛과 같이 곧 응시자 모두의 공통된 애환과 애착으로 전이(轉移)되어 갑자기 작가의 특별한 이미지가 응시자의 경험적인 공간에서 아무 이미지로 환원된다. 이럴 경우 이미지들은 조건반사와 같은 무기표의 신호로서 관객의 심연에 내재된 기억을 자극하는 자극-이미지(image-stimuli)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의 희미한 기억의 흔적으로서 반향 없는 허공의 메아리가 된다.

이경률 (사진 이론가)




바람의 언어(Venti Logos)
윤 은자


이 사진들은 사진 찍는 다는 행위와 사진철학의 한 부분인 결정적 순간에 대한 주관적인 관점을 연구한 이미지들이다.
우리 앞에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을 통해서 대상을 인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대상과 우리와 일정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 관점으로부터 한국의 미가 지닌 대상에 사진기의 파인더를 통해 그것의 멋을 관찰한다는 것이다. 이 때 사진기의 파인더에 잡힌 대상은 문화 그리고 역사적으로 상징화된 한국의 풍광이다.
상징화된 대상 앞에서 본인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측면에서 피사체의 실재를 있는 그대로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퍼포먼스를 통해 또 다른 의미의 결정적 순간을 재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결정적 순간의 단어적인 의미는 브레송의 철학과 동일하다. 그는 공간을 선택하고 시간이라는 절대적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순간에 벌어지는 상황을 필름의 표면에 고정시키는 것이다. 본인의 결정적 순간은 브레송의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으나, 그것의 차이는 본인이 연출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한 순간을 포착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이 모더니즘적 사고였다면 본인이 의도하는 결정적 순간은 후기 모더니즘적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각적 사고의 경험은 한국의 전통적인 춤의 백미인 승무로부터 기인되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승무의 절정은 장삼의 순간적인 미묘한 움직임이다. 그 순간적인 움직임이 사진기의 셔터 스피드에 의해 고정되었을 때, 그 이미지는 결정적 순간에 의해 한국의 미로 포착되는 것이다. 한국의 멋을 재현하기 위해 1차로 공간을 설정한 후 그 공간과 어우러진 색을 지닌 천을 결정한다. 그 다음 바람의 힘을 빌려 그 천을 허공에 뿌려 천의 형상이 셔터 찬스에 의해 공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하나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상과 색 그리고 천의 형상이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하나의 이미지가 재현되는 것이다. 이 때 바람의 방향 그리고 본인의 연출 행위, 푸른 하늘을 향해 천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통해서 한국의 미가 지닌 아름다움이 창조되는 것이다.
작품에 재현된 바람의 의미는 한 지역에 존재했던 바람의 한 형태이며, 이 바람의 형태가 곧바로 배경과 어우러진 한국 자연의 멋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또한 본인의 사진에서 화면 구도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람에 의해 색을 지닌 천의 형상이 대상과 조화를 이루려면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늘 공간에서 그것이 상징적인 바람의 언어로 탄생되기 때문이다. 색을 지닌 천의 선택은 일반론적인 측면에서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에 기인한 색채가 지닌 상징성을 바탕으로 결정되었다.
결국 사진기의 파인더에 잡힌 자연, 색을 지닌 천 그리고 바람을 통해서 한국의 문화가 지닌 상징성을 바람의 언어로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이 사진들은 포스트모더니즘 관점에서 연출이 가미된 또 다른 의미의 결정적인 순간에 의해 재현된 한국의 멋이며, 한국의 미이다.


윤은자
EDUCATION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사진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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