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O BOHN CHANG




COSMOS 01, 141x102cm, Archival pigment print, Edition of 3, 2020


"Mild beauty of a Moon jar"


KOO BOHN CHANG




“백자를 안 찍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나 싶어요.(웃음)” 구본창은 이렇게 말했지만 1980년대 말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래 그의 작업이 멈춰선 적은 없었다. 특히 백자 연작은 작업세계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 이정표 같은 작업이다. 백자에서 푸른색 그림이 그려진 청화백자로, 오래된 모던함이 돋보이는 검은색 곱돌 작업 등으로 영역을 넓혀왔으며,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러나 지금의 명예로운 사건들은, 그가 백자를 단지 가능성과 잠재성을 품은 작업 소재로만 대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 확신한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그 선택이란, 예컨대 예술가의 영감이 그렇듯, 갑자기 내 품으로 떨어지거나, 내 시야에 들어오거나, 내 손에 쥐어지는 게 아니다. 선택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만 진정한 힘을 발한다. 선택과 선택 사이에는 우연으로 위장한 숱한 선택들이 포진해 있고, 모든 선택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작가의 행복한 반문에는 연대기적 가정들이 숨어 있다. 여백에 관심을 갖지 않았더라면, 무언가를 담는 그릇이나 용기에 애잔함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하찮아 보이는 사물을 귀하게 여기는 감수성이 없었더라면…. 외로웠지만 고립의 정서를 즐길 줄 알았던 ‘소년 구본창’은 특히 하찮은 사물들에 애정을 쏟았고, 이로써 위안받았으며, 작은 상자에 소중한 대상을 보관하는 남다른 아이였다. 그가 결국 사진을 찍게 된 이유도 카메라야말로 어떤 사물, 어떤 감성, 어떤 풍경을 본인만의 시선으로 담을 수 있는 최고의 ‘그릇’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구본창, Vessel (AAM 01), 154x123cm, C-print, ed 3of7,  2011


구본창의 백자를 본 누구라도 이들을 마음에 품을 법하다. ‘내 곁에 두고 싶다’는 세속적인 욕망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보다는 엄연히 존재함에도 사라지고 있는 듯한 구본창의 백자 특유의 초월적인 무심함에 본능적으로 이들의 존재를, 이들의 시간을, 이들과의 인연을 마냥 붙잡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이런 불멸과 필멸의 시간성은 그의 작업 전반을 지배한다. 예컨대 〈탈〉 연작은 탈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궁금증을 넘어 실재냐 허상이냐의 문제를 제기했다. 〈비누〉 시리즈는 다 써서 작아져 버린 비누를 통해 이를 사용한 이의 시간을 예측하게 했다. 아버지의 임종을 찍은 〈숨〉 연작은 존재와 부재의 가장 날 선 경계를 기록한 작품이었다. 〈굿바이 파라다이스〉는 나비의 영혼을 부활시켰고, 〈태초에〉는 존재의 시작을 탐험했으며, 〈시간의 초상〉은 텅 빈 벽의 흔적을 통해 시간성을 복기했다. 즉 우리는 구본창이 백자를 찍을 수 있었던 건 그간 존재와 부재, 우연과 필연, 채움과 비움이 자신의 작업뿐 아니라 우리 삶의 주효한 질서임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왔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