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 <마음새-몸새-이음새>

김 선 | 달항아리, 마음새-몸새-이음새, 72.7×60.6cm, Mixed media, 2025




[서문]

 

달을 그리는 마음


김선의 달항아리는 “그리지 않는다. 빚는다. 흙이 아닌 색으로, 손이 아닌 마음으로” 그림이라는 평면적 개념을 넘어, 조선 도공의 심정으로 시간을 축적하고 마음의 결을 입힌다. 반복되는 재료의 혼합, 그 위에 쌓이는 시간과 기다림,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섬세한 결. 작가가 캔버스 위에 달항아리를 올려놓는 방식은 회화이지만, 그 안에는 도자의 온도와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는 오랜 시간, 평면이라는 공간 안에서 달항아리와 마주해 왔다. 밑색 위에 재료를 얹고, 그 재료가 마르며 갈라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균열, 즉 ‘빙렬(氷裂)’은 그렇게 스스로의 형상을 갖추어 간다. 이 과정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기에, 작업은 의도와 우연 사이의 긴장과 응축을 반복하며 완성된다. 이러한 기다림은 수행에 가깝다. 특히 그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재료 실험과 빙렬 기법을 통해, 도자기 고유의 질감과 온도를 캔버스 위에 시각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한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그의 달항아리는 매번 조금씩 다르다. 색도, 곡선도, 갈라지는 결도 하나같지 않다. 흡사 같은 형상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 미묘한 차이가 화면마다 다른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반복 속의 차이는 곧 작가가 말하는 ‘마음의 결’이다. 작업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결이, 달항아리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달항아리는 완전한 원형이 아니다. 조금은 기울고, 때로는 눌리며, 각기 다른 선과 면을 갖는다. 그러나 그 어긋남은 불완전함의 미학이며, 여백의 미를 품은 형태이다. 화면 속 곡선은 오히려 한결 편안한 시선을 유도한다. 작가는 그 안에서 풍요를 읽어낸다. 채움보다 비움이 중심이 되는 미감, 절제 속에 담긴 너그러움이 그의 작업 전반을 감싸고 있다.


이번 전시는 김선의 달항아리를 오롯이 감각하는 시간이다. 빛이 스며드는 곡선, 미세하게 갈라진 화면의 결, 얇게 쌓인 색의 레이어 속에서 작가는 고요한 정서를 건넨다. 그것은 전통에 대한 해석이자, 동시대 회화 안에서 가능한 또 하나의 미감이기도 하다.

김선 작가의 ‘달항아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현대적인 전통이다. 고요한 품격과 담담한 감동이 머무는 이 자리에서, 당신만의 ‘또 하나의 달’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은 마침내 빚어진다.



[평론]

 

달항아리, 빙렬감각(氷裂感覺)

 

“내 그림은 반드시 보아야 진가(眞價; 참된 가치)를 알 수 있다. 도공(陶工)의 마음 결을 평면 회화로 표현하기 위해 물성과 일체 된 십여 년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나의 달항아리는 달처럼 둥글어지는, 달항아리와 하나 되는 물아일체적(物我一體)적 감각이다.” - 김선 인터뷰 중에서


백자 달항아리를 평면 캔버스 위에 담백하고 순수하게 재현한 김선 작가는 <달항아리의 꿈>을 소재로 옅은 회백색과 푸른 에너지를 머금은 영롱한 빛을 빙열 효과(섬세한 갈라짐) 속에서 극대화 시켜 왔다. 축적된 재료들의 혼합으로 자신만의 시스템을 만들고, 과학적인 재료학에 근거해 연구와 실천을 되새긴 결과다. 작가는 선조들의 정신세계까지 오롯이 ‘선과 형, 색과 빛’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마음의 결, 빙렬 드로잉


미세한 뉘앙스를 가진 모두 다른 달항아리, 실제 김선 작가의 작품들은 다 비슷해 보여도 같은 형태와 색이 단 하나도 없다. 달항아리에서 풍요의 심상을 표현한다는 작가는 10여 년 이상을 실제 달항아리와 유사한 평면성을 연구하기 위해 매진했다. 제목이 빙렬감각(氷裂感覺)인 이유는 달항아리를 ‘마음새-몸새-이음새’로 연결해온 작가의 투철한 태도를 감각적으로 느껴야 비로소 ‘달항아리 보기’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빙렬의 크기 역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진다. 이른바 시각효과, 미켈란젤로가 시대의 역작 <다비드상(david, 아카데미아 미술관 소장)>을 제작할 때, 2미터가 넘는 조각의 시각효과를 고려해 머리를 더 크게 제작한 것과 같은 논리다. 달항아리의 안정적 시야 확보를 위해 좁은 굽 위로 펼쳐낸 빙렬은 두텁고 크게 시작해 비대칭의 중심부를 관통하면서 점차 작아진다. 상단부는 작고 미세하게 그려내 ‘감각의 층위’에 다양성을 부여한 것이다. 작가는 청년 시절 구상성 있는 다양한 장르를 그렸지만 내내 허무한 감성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중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달항아리는 ‘마음의 결’을 따스하게 채워주었고, 이때부터 시작된 자신만의 달항아리는 ‘실제 도공의 마음 결’을 좇아온 오랜 평면 실험의 결과를 완성 시켰다. 도자를 평면화한 듯한 작업, 초기 달항아리는 요철(凹凸)이 지금보다 두터워 ‘실제 도자로 제작하느냐’ 혹은 ‘평면에 실제 도자를 붙인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다. 작가는 이러한 상식적인 물음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부조 같은 회화가 아니라, 평면을 고수하면서도 ‘얇디얇은 빙렬의 미감’을 자신만의 시그니쳐로 부각시킨 것이다. 실제 작가의 작품을 만져보면 표면이 도자기와 같은 느낌을 준다. 조선 도공이 제작한 50센치 전후의 달항아리는 실패율이 높아 실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김선 작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 것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딛고 나온 ‘빙렬 드로잉(split drawing)’을 감각으로 연결한 작품들, 자신의 한계성을 인지하고 깨달은 철저한 노동은 이제 작가에게 달항아리가 시대를 넘나드는 자유의 상징임을 확인시켜 준다.


비균제와 균제의 조화, 달항아리가 주는 풍요


넉넉한 가을의 풍요를 닮은 김선의 달항아리, 보름달과 닮았지만 완전한 구형이 아닌 그 자연스러운 비대칭은 ‘개성어린 오늘의 풍요’와 닮았다. 이른바 비균제성. 이는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1905~1944)이 한국미의 정점으로 꼽은 요소 중 하나로, 정확하지 않아 더욱 매력넘치는 한국 특유의 미감을 보여준다. 얼핏 보기에 찌그러진 듯 보이는 김선의 달항아리는 정제된 빙렬의 시선을 담아 자유와 안정감을 동시에 유발한다. 작가의 비균제가 그럼에도 균형감각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달항아리’가 가진 본체의 여유 때문일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대표 브랜딩으로 손꼽히는 달항아리는 상당히 많은 작가들이 선택한 소재이다. 하지만 다양한 달항아리 작가들과 차별성을 둔 김선의 작업은 조선백자가 가진 균제성을 작가의 노동으로 연결해서 더욱 가치가 있다. 달항아리의 공식 학명은 백자대호(白瓷大壺)이다, 달항아리라는 정겨운 이름을 붙인 이는 앞서 비균제성을 언급한 고유섭 선생이다. 하이얀 자기(磁器: 사기 그릇)이 달을 품었다는 의미다. 무광무색(無光無色)의 순수로 느껴지지만, 모양새와 색감이 같은 달항아리는 단 한 개도 없다. 미술사학자 김원룡(三佛 金元龍, 1922~1993)은 달항아리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원은 둥글지 않고 면은 고르지 않으나, 물레 돌리다 보니 그리되었고, 바닥이 뒤뚱거리나 뭘 좀 괴어 놓으면 넘어지지 않을 게 아니오. 조선백자에는 허식이 없고 산수와 같은 자연이 있기에….” 달항아리에 담긴 무심(無心)의 미학은 비틀린 비대칭과 만나 21세기의 풍요와 맞닿는 것이다.


김선의 달항아리에 있는 유백색의 뉘앙스는 크게는 다섯에서 좁게는 셀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뉘앙스로 우리와 만난다. 실제 수려한 곡선과 아름다운 유백색을 지닌 달항아리는 평균 45~55센치 사이를 빼어난 수작으로 말한다. 조선 도공의 달항아리를 소유할 수 없다면, 작가의 현대화된 균형 미감을 풍요의 에너지 속에서 소장해 보는 것이 어떨까. 김선의 달항아리는 빙렬감각을 우리의 인생 드로잉처럼 새겨넣은 ‘백색 미감의 세련된 조화’가 아닐까 한다. 만인(滿人)을 비추는 만추(晩秋)의 감각 속에서 달빛처럼 넉넉하고 귀한 ‘김선의 달항아리’와 만나기 바란다.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달항아리 작가’ 김선의 예술 여정은 어린 시절 즐겨 그리던 그림에서 시작됐다. 그는 “그림은 제게 놀이이자 삶 그 자체였고, 화가 말고는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회상한다. 화가로 향하는 길은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붓을 잡는 순간의 행복과 열정은 늘 충만했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며 위기가 찾아왔다. “내 것”이 없다는 회의감이 몰려왔고, 방향을 잃은 채 수많은 실험을 반복했다. 붓조차 잡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작업 과정에서 우연히 생겨난 균열(빙열)을 달항아리에 접목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는 “그 순간 달항아리가 제 작업의 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 작가가 달항아리를 작업의 중심에 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선백자의 정수로 꼽히는 달항아리는 완벽하지 않은 둥근 형태, 담백한 색감, 자연스러운 비대칭이 특징이다. 그는 이를 겸손과 절제, 여백의 미로 해석하며 “나의 미학적·철학적 지향점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달항아리는 단순한 백자가 아니다. 혼합재료를 활용해 질감과 입체감을 극대화하고, 표면에 드러나는 균열은 인간의 상처와 기억을 은유한다. 김 작가는 “균열을 화면에 옮기는 과정이 곧 카타르시스”라며 “마치 일기를 쓰듯 아픔을 기록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고 했다.

김선 작가가 작업실에서 달항아리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혼합재료와 빙열 표현으로 삶의 균열과 치유의 의미를 담아낸다.
김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따뜻하다. 둥글고 비움이 있는 달항아리를, 세상을 품는 그릇으로 해석하며 “달항아리를 통해 세상과 사람을 품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서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고요한 울림과 위로”를 느끼길 바란다.

‘달항아리 작가’라는 별칭에 대해 김 작가는 긍정적이다. 그는 “달항아리는 제 작업의 중심 소재이자 상징적 언어이며, 전통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독창적 시도로서 제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향후 작업 방향에 대해 그는 “혼합재료와 빙열 표현을 더 발전시켜 회화와 조형의 경계를 탐구할 것”이라며 “달항아리라는 전통적 소재를 새로운 조형 언어로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대중들에게 “전통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가, 달항아리를 통해 한국적 미학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로 기억되길 바란다. “‘치유하는 예술’을 목표로, 작품이 자신에게는 위로가 되고 관람객에게는 삶을 보듬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바람처럼, 김 작가는 오늘도 달항아리의 균열 속에 삶과 치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윤일선 (국민일보 기자)

 


[작가노트]

 

나는 달항아리에 시간의 흔적과 자연의 호흡을 담기 위해 수많은 작업과정 끝에 혼합재료를(mixed media)선택했다.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나 예상치 못한 질감과 색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은, 삶이 겹겹이 쌓이고 흔적을 남기는 인간의 여정과 닮아 있다.

특히 내가 즐겨 사용하는 빙렬(crackle) 기법은 표면이 갈라지고 균열이 생기며 드러나는 심층을 통해 보이지 않는 기억과 세월의 깊이를 드러낸다. 내 작품의 빙렬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자연스러운 기록이자 ‘진행 중인 변화’를 상징한다.


옛 선조들은 1300도의 고온 속에서 백자 대호를 만들어내기 위해 하늘이 허락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그 과정처럼, 며칠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듯이 나 또한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마음과 감각을 오롯이 평면 위에 옮긴다.


캔버스 위에서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안으며 기다림 속에서 완성된 한 점의 달항아리를 통해 삶의 균열 속에서 따뜻한 위안을 받길 바란다.


 -김 선


[약력]


김선(Kim Sun)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졸업


[전시]

2025년 갤러리 나우 _ 마음새-몸새-이음새展

2025년 가온 갤러리 초대개인전

2024년 갤러리 나우 <빙렬, 마음새-몸새-이음새>展

2024년 구구 갤러리 초대개인전

2024년 아리아 갤러리 초대개인전

2023년 가온 갤러리 초대개인전

2023년 BODA 갤러리 초대개인전

2023년 라우 갤러리 초대개인전

2022년 돈화문 갤러리 초대개인전

2021년 마루아트센터 초대개인전

2020년 가가갤러리 초대개인전

2019년 사단법인 고성문화마을 창작스튜디오 초대 개인전

2018년 라메르 갤러리 초대 개인전

2017년 라메르 갤러리 개인전

2016년 올미 아트스페이스 초대 개인전

2015년 우리 갤러리 초대 개인전

2014년 미국 퀸시 갤러리 초대 개인전 외 다수

개인전25회, 단체전200여회


[페어]

KIAF, ART SEOUL, 화랑미술제,

아트부산, 구상대제전, BAMA국제아트페어, 대구국제아트페어, 아트광주,

서울아트쇼, 싱가폴어포터블, 룩셈브르크 Art Week, 독일 아트칼스루헤 등


[수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

대한민국 수채화공모대전대상,

세계미술교류대상(언론기자협회) 등


[경력]

전)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전)호국미술대전 심사위원,

현)한국미술협회이사,

현)현대여성 미술대전 운영 및 심사위원,

현)현대조형 미술대전 운영 및 심사위원,

현)서울아카데미회 이사


[작품 이미지]

김  선 | 달항아리, 마음새-몸새-이음새, 156.0×130.0cm, Mixed media, 2025


김  선 | 달항아리, 마음새-몸새-이음새, 156.0×130.0cm, Mixed media, 2025


김  선 | 달항아리, 마음새-몸새-이음새, 120.0×110.0cm, Mixed media, 2025


김  선 | 달항아리, 마음새-몸새-이음새, 110.0×100.0cm, Mixed media, 2025


김  선 | 달항아리, 마음새-몸새-이음새, 106.0×92.0cm, Mixed media, 2025


김  선 | 달항아리, 마음새-몸새-이음새, 86.0×75.0cm, Mixed media, 2025


김  선 | 달항아리, 마음새-몸새-이음새, 86.0×75.0cm, Mixed media, 2025


김  선 | 달항아리, 마음새-몸새-이음새, 72.7×60.6cm, Mixed media, 2025


김  선 | 달항아리, 마음새-몸새-이음새, 72.7×60.6cm, Mixed media, 2025


김  선 | 달항아리, 마음새-몸새-이음새, 53.0×45.5cm, Mixed media, 2025


김  선 | 달항아리, 마음새-몸새-이음새, 53.0×45.5cm, Mixed media, 2025


김  선 | 달항아리, 마음새-몸새-이음새, 53.0×45.5cm, Mixed media,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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