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시스 Lamesis 1, 150x10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3
라메시스(Lamesis)
‘라메시스(Lamesis)’는 바다를 뜻하는 프랑스어 ‘라 메르(La mer)’와 고대 그리스어로부터 유래한 모방이라는 의미의 ‘라 미메시스(La mimèsis)’를 섞어 내가 임의로 만든 말입니다.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단어지만 두 개의 단어가 ‘이미지와 텍스트’의 의미로 연결됩니다. 즉 내 작품에서 ‘바다’와 같은 이미지와 그것이 가리키는 ‘모방’이라는 텍스트와 연동하는 것입니다.
나의 작품에서 바다는 대상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 채 시각적 닮음을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이미지입니다. 나는 유사함 또는 닮음을 강조하여 오해와 착각을 유도하기보다는 밖에서 내면으로 들어온 관념적 풍경을 재현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나의 의도는 바다에 대한 기억과 회상으로 더 확장된 비 실재적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불완전하지만 환상적입니다.
각 개인은 바다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각기 다르게 갖고 있습니다. 바다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가진 나는 감정 몰입을 통해 바다를 새롭게 보고자 합니다. 바다는 나에게 자아에 집중하기 위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합니다. 바다는 현실에서 불편하거나 불안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며, 내면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바다와 만나는 순간은 일종의 정화를 경험하게 되며, 어린 시절 어두운 다락방에서 느낀 공포가 서서히 안정과 평온으로 변하는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와 비슷한 느낌을 안겨줍니다. 나의 작업에서 이런 감정의 파편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왜곡되며, 관객을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으로 안내합니다. 예를 들어, 과장된 파스텔 톤의 색상, 비현실적인 거리감, 시폰으로 위장한 파도 등은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설고 어색한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바다에 대한 외형적 닮음에서의 유사성을 반영하는 한편, 미적 대상과 작가의 내면적 기억과 상상이 결합한 새로운 바다 풍경을 보여줍니다.
- 창남 -
갤러리나우는 한 해를 시작하는 전시로 사진작가 창남의 개인전 <라메시스 Lamesis>를 개최한다. 전시에서는 실재적 풍경을 그린 <바다>연작과 관념적 풍경을 그린 신작 <라메시스 Lamesis> 25여 점이 전시된다.
창남은 한 겨울의 밤 촬영한 바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감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시도해왔다. 작가는 바다를 현실의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 본인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여겼다. 작업에서는 어두움 속에서 파도의 흐름에 따라 물결이 사라지고 생성되는 순간에 느꼈던 작가의 ‘편안함’이라는 감정이 표면화되어 파스텔 톤의 몽환적인 장면으로 연출된다. 신작 <라메시스>는 기존의 <바다>시리즈를 프린트한 후, 실재 바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게 하는 조개껍데기, 모래 등을 세팅하고 재촬영 하는 방식을 취한다. 여기에 그가 생각하기에 바다와 유사한 생활 속의 오브제인 쉬폰 천을 사용하여 다양한 물의 형태로 관람객이 자신의 감정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번 전시 제목이자 신작의 전체 제목인 ‘라메시스’는 프랑스어 ‘라메르’(바다)와 고대그리스어 ‘라미메시스’(모방)를 합성하여 작가가 새롭게 만들어낸 허구의 단어이다. 작업에서는 각각 라메르-바다-이미지, 라메이시스-모방-텍스트로 연동하여 작업의 내용을 풀어낸다. 전작인 <바다>연작은 바다가 지닌 본래의 이미지와 작가 본인이 바다에 대해 느꼈던 특별한 감성에 집중했다면 <라메시스>는 쉬폰을 바다의 형상으로 화면을 구성하여 모방을 주제로 새롭게 전복된 이미지를 창출해낸다. 다만 화면은 바닷가와 관련된 오브제들로 인해 ‘바다’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게 할 뿐이다. 이는 그의 이번 작업이 실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이미지들을 관념적인 풍경으로 재구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의 작업은 파도처럼 밀려 오듯, 밀어 내듯 움직이지만 결코 과장되지 않는 불안정한 구도와 서정성으로 바다의 본질적인 형상을 넘어 낯설지만 아름다운 색면의 세계로 안내한다.
[평론]
풍경을 정물로 변주한 ‘환상 바다’ – 라메시스(Lamesis)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작가 창남은 이번 전시의 주제로 ‘라메시스(Lamesis)’를 내세웠다. 이것은 그녀가 불어로 바다를 뜻하는 ‘라 메르(La mer)’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모방이라는 의미의 ‘라 미메시스(La mimèsis)’를 혼성해 만든 사전에 없는 단어이다. 이 혼성어는 이번 전시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창남이 이번 전시에서 ‘바다’ 이미지를 닮은 꼴로 ‘모방’하되 단순한 외관의 재현이 아닌 작가 내면의 기억과 감성이 교류하는 환상의 이미지로 변환하여 선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창남의 라메시스 연작을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의 바다’로 부르기로 한다. 이 작명이 이미지(image)의 고대 그리스 어원인 ‘판타스마(φάντασμα)’에 ‘고리아’가 붙어 초현실적 이미지인 환영상(幻影像)을 지칭하는 만큼, ‘환영 혹은 환상의 바다’라고 할 만하다. 최근작은 작가가 실제로 현장에 나가 필터 삽입과 노출 조정으로 바다를 환상적인 색상의 이미지로 포착했던 이전의 바다 연작을 메이킹 포토(making photo)의 방식으로 계승, 변주한 것이다.
창남의 사진 창작 과정을 추적해 보자. 그녀는 흔히 시폰(chiffon)으로 불리는 얇고 부드러운 천을 걸어 바닥까지 드리우고 천의 뒤편에서 이전에 선보였던 바다 연작을 설치 후 조명으로 빛을 투과하고 바다 연작의 색과 이미지를 추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바닥에는 모래를 깔고 불가사리, 조개, 소라껍데기, 갈매기를 연상하게 하는 새의 깃털을 얹어 마치 바닷가처럼 꾸민 다음, 이것을 다시 촬영한다. 메이킹 포토의 일차 단계인 셈이다. 이후 컴퓨터에서 디지털 파일을 불러와 다시 미세한 후속 작업을 거치고 인화하는 이차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그녀의 메이킹 포토는 완성된다.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창남이 메이킹 포토의 일차 단계로 삼아 연출한 연극 무대와 같은 장치에 관한 것이다. 스튜디오에서 정물을 촬영하기 위해 배치한 테이블과 자연스러움을 한껏 치장한 주름지게 만든 천, 그 위에 중심을 잡도록 배치한 주요 오브제와 드문드문 놓은 부수적 오브제들과 같은 장치는 메이킹 포토에 있어서 일차적 필수 연출이다. 그녀는 이러한 방식으로 바다의 풍경(paysage)을 스튜디오로 가져와 정물(nature morte)로 전환하고 전유한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이 과일이나 꽃뿐만 아니라 해골, 뼛조각, 모래시계, 거울, 꺼진 촛불을 알레고리의 대상으로 삼아 인생을 은유하는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에 천착했다고 한다면, 창남의 이 바다 사진 연작은 시폰, 모래, 영상 프로젝션을 통해 정물화나 정물 사진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삶에 관한 교훈을 전제하는 알레고리보다는 “밖에서 내면으로 들어온 관념적 풍경”을 선보이는 데 더욱더 집중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창남은 이전 연작에서 두려울 만치 변화무쌍한 바다로부터 대자연의 ‘숭고 이미지’를 얻기 위해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파도와 대면하는 오랜 노동과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았다면, 이번 연작에서는 그 숭고의 풍경 이미지를 자가 경험 속 기억과 회상을 통해 ‘안온한 정물 이미지’로 치환한다. 특히 시뮬라크르로서의 ‘명백한 가짜 바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물결과 파도처럼 늘어뜨린 시폰의 주름 잡기와 그 위에 투사한 선명한 색의 바다 사진 그리고 고의로 어설프게 꾸민 해변의 연출 방식은 그녀가 지향하는 ‘밖에서 내면으로 들어온 관념적 풍경’를 극대화하기에 족하다.
그런데 밖에서 내면으로 들어오다니? 그것은 숭고의 풍경에서 안온한 정물로, 실사를 나간 야외에서 메이킹 포토의 실내로 그리고 현실의 ‘실재’에서 관념이라는 ‘비실재’로 이동하는 창작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이동과 전환의 건널목에는 기억과 회상이라는 주요 화두가 존재한다.
창남은 바다 풍경을 연출한 일련의 연극적 장치를 통해서 기억이 소환하는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의 미학을 오버랩시킨다. 그것은 부정의 개념이 아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서랍, 박스, 장롱, 구석, 조개, 집’과 같은 ‘감쌈의 공간’이 전하는 안온하고 편안한 공간을 설명하는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구약성서의 등장인물인 ‘요나가 거주했던 고래뱃속’이 처음에는 공포의 공간이었으나 점차 안온한 공간으로 바뀐 어떠한 전환의 과정을 내포한다. 그래서 이러한 전환의 공간에는 강력하고도 원초적인 긍정의 기억을 함유한다. 마치 우리의 무의식 속에 형성된 이미지인 ‘어머니의 자궁 속 모습’처럼 말이다.
창남은 바닥의 모래와 늘어뜨린 시폰이 구획하는 수평과 수직의 공간 그리고 천 주름,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상의 프로젝션과 같은 연출을 통해 ‘바다’를 두려운 숭고의 대자연에서 안온한 감쌈의 공간으로 전환하면서 요나 콤플렉스의 미학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공간을 다시 최종적으로 카메라로 포착하는 바다 연작은 바다라는 실재에 대한 작가만의 기억이 확장하는 비실재적 풍경이 된다. 그것은 불완전하지만, 환상적인 관념 풍경이 된다.
이번 전시 라메시스에서 창남은 바다라는 풍경을 정물로 변주한 환상의 관념 풍경을 선보인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창남의 이번 전시를 메이킹 포토와 기억으로 소환한 ‘환상 바다’라는 의미의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의 바다’ 혹은 ‘액자 속 액자 소설’을 사진으로 시도한 ‘여러 폭의 마인드스케이프(mindscape)’라고 부를만하다. 그 안에서 관객이 할 일이란 무엇일까? 도시 속으로 소환한 바다 풍경 앞에서, 프랑스 작가 빅토르 푸르넬(Victor Fournel)의 언급처럼 ‘산보하는 사람(flâneur)’이 되어 스스로 ‘움직이는 사진’이 되어 보면 어떨까?
[작품 이미지]
라메시스 Lamesis 3
72x53.6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3
라메시스 Lamesis 4
72x48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3
라메시스 Lamesis 7
67x10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3
라메시스 Lamesis 8
70x55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3
Desire #7
70x47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19
Desire #43
70x47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19
Desire #48
70x47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19
[약력]
창남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졸업
경원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개인전 (19회)
2024 라메시스(LAmesis), 갤러리 나우, 서울,
2023 파도,빛에 조응하다, Roam Gallery, 뉴욕, 미국
2022 파도,빛에 조응하다, INITIAL LABO GALLERT, 프랑스
2021 Desire, 양평군립미술관, 양평, 한국
2021 Desire, 아산갤러리, 서울
2021 Desire, 유나이티드갤러리, 서울
2020 Desire, 연우갤러리, 서울
2019 Desire, WEME갤러리, 말레이시아
2018 바다와 나-그 사이 공간, 연우갤러리, 서울
2017 기억의 환상, 금보성아트센터, 서울
2015 바다와 나-그 사이 공간, 구하갤러리, 서울
2015 낯선 바다, 한국문화원, 일본
2014 바다와 나-그 사이 공간, 장은선갤러리, 서울
2013 Illusion, 프랑스문화원, 서울
2013 바다와 나-그 사이 공간, 인사아트센터, 서울
2010 나는 바다를 보았다, Gallery M, 서울
2010 환유적 바다, 갤러리 아트사간, 서울
2008 환, 싸이드림 포토갤러리, 서울
2007 비, 갤러리비트, 서울
그룹전 및 아트페어 (100여 회)
2023 핑크아트페어 신라호텔, 서울
2023 3인전 핑크갤러리, 서울
2023 Art Expo New York, 뉴욕, 미국
2023 Carte Blanche aux Galeries d’art, 블로뉴비앙쿠르 아트센터, 프랑스
2022 핑크아트페어, 인터콘티넨탈 호텔, 서울
2022 조형아트서울, 코엑스, 서울
2022 아트컨티뉴 ‘솝풍전‘ 아트컨티뉴, 서울
2022 화랑미술제, 코엑스, 서울
2021 현대 미술의 시선 ‘현실과 이성의 조응’, 양평미술관, 양평, 한국
2021 인천개항장 국제영상페스티벌, 한중문화관, 한국
2019 Affordable Art Fair Singapore, 싱가포르
2019 Art Shopping, 카루셀 루브르, 프랑스
2019 대구아트페어, 대구엑스코, 한국
2019 ART EXPO MALAYSIA, 말레이시아
2019 MANIF 서울국제아트페어, 예술의전당, 서울
2019 Art Formosa, 대만
2019 2인전, 별갤러리, 부산, 한국
2016 Art Canton, 광저우, 중국
2016 Art Gwangju,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한국
2015 Art Edition Print/Photo, 홍익대학교 미술관, 서울
2015 Between eye and mind, 리서울 갤러리, 서울
2015 Blssed Land, Yangpyeong, 양평미술관, 한국
2014 일상과 무상 기획전, 충무아트홀, 서울
2013 인천아트페어, 인천 선광미술관, 인천, 한국 외 다수
기타
프랑스 미술 작업 (1990-1996)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강사 역임
강원대학교 강사 역임
수상
2010 월간사진예술 오늘의 작가상
작품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종로구청, 한라인재개발원, 구하갤러리, 쥬넥스갤러리
라메시스 Lamesis 1, 150x10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3
라메시스(Lamesis)
‘라메시스(Lamesis)’는 바다를 뜻하는 프랑스어 ‘라 메르(La mer)’와 고대 그리스어로부터 유래한 모방이라는 의미의 ‘라 미메시스(La mimèsis)’를 섞어 내가 임의로 만든 말입니다.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단어지만 두 개의 단어가 ‘이미지와 텍스트’의 의미로 연결됩니다. 즉 내 작품에서 ‘바다’와 같은 이미지와 그것이 가리키는 ‘모방’이라는 텍스트와 연동하는 것입니다.
나의 작품에서 바다는 대상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 채 시각적 닮음을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이미지입니다. 나는 유사함 또는 닮음을 강조하여 오해와 착각을 유도하기보다는 밖에서 내면으로 들어온 관념적 풍경을 재현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나의 의도는 바다에 대한 기억과 회상으로 더 확장된 비 실재적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불완전하지만 환상적입니다.
각 개인은 바다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각기 다르게 갖고 있습니다. 바다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가진 나는 감정 몰입을 통해 바다를 새롭게 보고자 합니다. 바다는 나에게 자아에 집중하기 위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합니다. 바다는 현실에서 불편하거나 불안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며, 내면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바다와 만나는 순간은 일종의 정화를 경험하게 되며, 어린 시절 어두운 다락방에서 느낀 공포가 서서히 안정과 평온으로 변하는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와 비슷한 느낌을 안겨줍니다. 나의 작업에서 이런 감정의 파편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왜곡되며, 관객을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으로 안내합니다. 예를 들어, 과장된 파스텔 톤의 색상, 비현실적인 거리감, 시폰으로 위장한 파도 등은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설고 어색한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바다에 대한 외형적 닮음에서의 유사성을 반영하는 한편, 미적 대상과 작가의 내면적 기억과 상상이 결합한 새로운 바다 풍경을 보여줍니다.
- 창남 -
갤러리나우는 한 해를 시작하는 전시로 사진작가 창남의 개인전 <라메시스 Lamesis>를 개최한다. 전시에서는 실재적 풍경을 그린 <바다>연작과 관념적 풍경을 그린 신작 <라메시스 Lamesis> 25여 점이 전시된다.
창남은 한 겨울의 밤 촬영한 바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감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시도해왔다. 작가는 바다를 현실의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 본인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여겼다. 작업에서는 어두움 속에서 파도의 흐름에 따라 물결이 사라지고 생성되는 순간에 느꼈던 작가의 ‘편안함’이라는 감정이 표면화되어 파스텔 톤의 몽환적인 장면으로 연출된다. 신작 <라메시스>는 기존의 <바다>시리즈를 프린트한 후, 실재 바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게 하는 조개껍데기, 모래 등을 세팅하고 재촬영 하는 방식을 취한다. 여기에 그가 생각하기에 바다와 유사한 생활 속의 오브제인 쉬폰 천을 사용하여 다양한 물의 형태로 관람객이 자신의 감정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번 전시 제목이자 신작의 전체 제목인 ‘라메시스’는 프랑스어 ‘라메르’(바다)와 고대그리스어 ‘라미메시스’(모방)를 합성하여 작가가 새롭게 만들어낸 허구의 단어이다. 작업에서는 각각 라메르-바다-이미지, 라메이시스-모방-텍스트로 연동하여 작업의 내용을 풀어낸다. 전작인 <바다>연작은 바다가 지닌 본래의 이미지와 작가 본인이 바다에 대해 느꼈던 특별한 감성에 집중했다면 <라메시스>는 쉬폰을 바다의 형상으로 화면을 구성하여 모방을 주제로 새롭게 전복된 이미지를 창출해낸다. 다만 화면은 바닷가와 관련된 오브제들로 인해 ‘바다’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게 할 뿐이다. 이는 그의 이번 작업이 실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이미지들을 관념적인 풍경으로 재구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의 작업은 파도처럼 밀려 오듯, 밀어 내듯 움직이지만 결코 과장되지 않는 불안정한 구도와 서정성으로 바다의 본질적인 형상을 넘어 낯설지만 아름다운 색면의 세계로 안내한다.
[평론]
풍경을 정물로 변주한 ‘환상 바다’ – 라메시스(Lamesis)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작가 창남은 이번 전시의 주제로 ‘라메시스(Lamesis)’를 내세웠다. 이것은 그녀가 불어로 바다를 뜻하는 ‘라 메르(La mer)’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모방이라는 의미의 ‘라 미메시스(La mimèsis)’를 혼성해 만든 사전에 없는 단어이다. 이 혼성어는 이번 전시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창남이 이번 전시에서 ‘바다’ 이미지를 닮은 꼴로 ‘모방’하되 단순한 외관의 재현이 아닌 작가 내면의 기억과 감성이 교류하는 환상의 이미지로 변환하여 선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창남의 라메시스 연작을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의 바다’로 부르기로 한다. 이 작명이 이미지(image)의 고대 그리스 어원인 ‘판타스마(φάντασμα)’에 ‘고리아’가 붙어 초현실적 이미지인 환영상(幻影像)을 지칭하는 만큼, ‘환영 혹은 환상의 바다’라고 할 만하다. 최근작은 작가가 실제로 현장에 나가 필터 삽입과 노출 조정으로 바다를 환상적인 색상의 이미지로 포착했던 이전의 바다 연작을 메이킹 포토(making photo)의 방식으로 계승, 변주한 것이다.
창남의 사진 창작 과정을 추적해 보자. 그녀는 흔히 시폰(chiffon)으로 불리는 얇고 부드러운 천을 걸어 바닥까지 드리우고 천의 뒤편에서 이전에 선보였던 바다 연작을 설치 후 조명으로 빛을 투과하고 바다 연작의 색과 이미지를 추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바닥에는 모래를 깔고 불가사리, 조개, 소라껍데기, 갈매기를 연상하게 하는 새의 깃털을 얹어 마치 바닷가처럼 꾸민 다음, 이것을 다시 촬영한다. 메이킹 포토의 일차 단계인 셈이다. 이후 컴퓨터에서 디지털 파일을 불러와 다시 미세한 후속 작업을 거치고 인화하는 이차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그녀의 메이킹 포토는 완성된다.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창남이 메이킹 포토의 일차 단계로 삼아 연출한 연극 무대와 같은 장치에 관한 것이다. 스튜디오에서 정물을 촬영하기 위해 배치한 테이블과 자연스러움을 한껏 치장한 주름지게 만든 천, 그 위에 중심을 잡도록 배치한 주요 오브제와 드문드문 놓은 부수적 오브제들과 같은 장치는 메이킹 포토에 있어서 일차적 필수 연출이다. 그녀는 이러한 방식으로 바다의 풍경(paysage)을 스튜디오로 가져와 정물(nature morte)로 전환하고 전유한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이 과일이나 꽃뿐만 아니라 해골, 뼛조각, 모래시계, 거울, 꺼진 촛불을 알레고리의 대상으로 삼아 인생을 은유하는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에 천착했다고 한다면, 창남의 이 바다 사진 연작은 시폰, 모래, 영상 프로젝션을 통해 정물화나 정물 사진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삶에 관한 교훈을 전제하는 알레고리보다는 “밖에서 내면으로 들어온 관념적 풍경”을 선보이는 데 더욱더 집중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창남은 이전 연작에서 두려울 만치 변화무쌍한 바다로부터 대자연의 ‘숭고 이미지’를 얻기 위해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파도와 대면하는 오랜 노동과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았다면, 이번 연작에서는 그 숭고의 풍경 이미지를 자가 경험 속 기억과 회상을 통해 ‘안온한 정물 이미지’로 치환한다. 특히 시뮬라크르로서의 ‘명백한 가짜 바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물결과 파도처럼 늘어뜨린 시폰의 주름 잡기와 그 위에 투사한 선명한 색의 바다 사진 그리고 고의로 어설프게 꾸민 해변의 연출 방식은 그녀가 지향하는 ‘밖에서 내면으로 들어온 관념적 풍경’를 극대화하기에 족하다.
그런데 밖에서 내면으로 들어오다니? 그것은 숭고의 풍경에서 안온한 정물로, 실사를 나간 야외에서 메이킹 포토의 실내로 그리고 현실의 ‘실재’에서 관념이라는 ‘비실재’로 이동하는 창작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이동과 전환의 건널목에는 기억과 회상이라는 주요 화두가 존재한다.
창남은 바다 풍경을 연출한 일련의 연극적 장치를 통해서 기억이 소환하는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의 미학을 오버랩시킨다. 그것은 부정의 개념이 아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서랍, 박스, 장롱, 구석, 조개, 집’과 같은 ‘감쌈의 공간’이 전하는 안온하고 편안한 공간을 설명하는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구약성서의 등장인물인 ‘요나가 거주했던 고래뱃속’이 처음에는 공포의 공간이었으나 점차 안온한 공간으로 바뀐 어떠한 전환의 과정을 내포한다. 그래서 이러한 전환의 공간에는 강력하고도 원초적인 긍정의 기억을 함유한다. 마치 우리의 무의식 속에 형성된 이미지인 ‘어머니의 자궁 속 모습’처럼 말이다.
창남은 바닥의 모래와 늘어뜨린 시폰이 구획하는 수평과 수직의 공간 그리고 천 주름,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상의 프로젝션과 같은 연출을 통해 ‘바다’를 두려운 숭고의 대자연에서 안온한 감쌈의 공간으로 전환하면서 요나 콤플렉스의 미학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공간을 다시 최종적으로 카메라로 포착하는 바다 연작은 바다라는 실재에 대한 작가만의 기억이 확장하는 비실재적 풍경이 된다. 그것은 불완전하지만, 환상적인 관념 풍경이 된다.
이번 전시 라메시스에서 창남은 바다라는 풍경을 정물로 변주한 환상의 관념 풍경을 선보인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창남의 이번 전시를 메이킹 포토와 기억으로 소환한 ‘환상 바다’라는 의미의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의 바다’ 혹은 ‘액자 속 액자 소설’을 사진으로 시도한 ‘여러 폭의 마인드스케이프(mindscape)’라고 부를만하다. 그 안에서 관객이 할 일이란 무엇일까? 도시 속으로 소환한 바다 풍경 앞에서, 프랑스 작가 빅토르 푸르넬(Victor Fournel)의 언급처럼 ‘산보하는 사람(flâneur)’이 되어 스스로 ‘움직이는 사진’이 되어 보면 어떨까?
[작품 이미지]
라메시스 Lamesis 3
72x53.6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3
라메시스 Lamesis 4
72x48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3
라메시스 Lamesis 7
67x10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3
라메시스 Lamesis 8
70x55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23
Desire #7
70x47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19
Desire #43
70x47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19
Desire #48
70x47cm
Archival pigment print on matte canvas
2019
[약력]
창남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졸업
경원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개인전 (19회)
2024 라메시스(LAmesis), 갤러리 나우, 서울,
2023 파도,빛에 조응하다, Roam Gallery, 뉴욕, 미국
2022 파도,빛에 조응하다, INITIAL LABO GALLERT, 프랑스
2021 Desire, 양평군립미술관, 양평, 한국
2021 Desire, 아산갤러리, 서울
2021 Desire, 유나이티드갤러리, 서울
2020 Desire, 연우갤러리, 서울
2019 Desire, WEME갤러리, 말레이시아
2018 바다와 나-그 사이 공간, 연우갤러리, 서울
2017 기억의 환상, 금보성아트센터, 서울
2015 바다와 나-그 사이 공간, 구하갤러리, 서울
2015 낯선 바다, 한국문화원, 일본
2014 바다와 나-그 사이 공간, 장은선갤러리, 서울
2013 Illusion, 프랑스문화원, 서울
2013 바다와 나-그 사이 공간, 인사아트센터, 서울
2010 나는 바다를 보았다, Gallery M, 서울
2010 환유적 바다, 갤러리 아트사간, 서울
2008 환, 싸이드림 포토갤러리, 서울
2007 비, 갤러리비트, 서울
그룹전 및 아트페어 (100여 회)
2023 핑크아트페어 신라호텔, 서울
2023 3인전 핑크갤러리, 서울
2023 Art Expo New York, 뉴욕, 미국
2023 Carte Blanche aux Galeries d’art, 블로뉴비앙쿠르 아트센터, 프랑스
2022 핑크아트페어, 인터콘티넨탈 호텔, 서울
2022 조형아트서울, 코엑스, 서울
2022 아트컨티뉴 ‘솝풍전‘ 아트컨티뉴, 서울
2022 화랑미술제, 코엑스, 서울
2021 현대 미술의 시선 ‘현실과 이성의 조응’, 양평미술관, 양평, 한국
2021 인천개항장 국제영상페스티벌, 한중문화관, 한국
2019 Affordable Art Fair Singapore, 싱가포르
2019 Art Shopping, 카루셀 루브르, 프랑스
2019 대구아트페어, 대구엑스코, 한국
2019 ART EXPO MALAYSIA, 말레이시아
2019 MANIF 서울국제아트페어, 예술의전당, 서울
2019 Art Formosa, 대만
2019 2인전, 별갤러리, 부산, 한국
2016 Art Canton, 광저우, 중국
2016 Art Gwangju,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한국
2015 Art Edition Print/Photo, 홍익대학교 미술관, 서울
2015 Between eye and mind, 리서울 갤러리, 서울
2015 Blssed Land, Yangpyeong, 양평미술관, 한국
2014 일상과 무상 기획전, 충무아트홀, 서울
2013 인천아트페어, 인천 선광미술관, 인천, 한국 외 다수
기타
프랑스 미술 작업 (1990-1996)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강사 역임
강원대학교 강사 역임
수상
2010 월간사진예술 오늘의 작가상
작품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종로구청, 한라인재개발원, 구하갤러리, 쥬넥스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