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기억을 긋다
Memories in Color
국대호 개인전
2025년 11월 05일(수) - 2025년 11월 28일(금)
[서문]
색, 기억을 긋다
국대호의 회화는 단순한 색의 병렬이 아니다. 그것은 색을 매개로 공간과 시간, 기억과 감각을 응축하는 그 자신의 궤적이다.
그는 20여 년 넘게 '색'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조형 언어에 몰두해 왔다. 스트라이프라는 반복의 형식을 통해 색과 색, 선과 선 사이에 긴장을 주고, 재료의 물성과 리듬을 변화시키며 화면을 밀고 당긴다. 색은 더이상 시각적 요소뿐만 아니라 그만의 또 다른 기억의 방식인 셈이다. 그래서 색은 그의 기억의 언어이자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도구이다.
초기 스트라이프 작업이 색과 색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발산의 에너지에 주목했다면, 근작의 스트라이프는 보다 밀도 있고 내밀하다.
작가는 물감의 밀도와 속도, 방향을 조절하며, 평면 위에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다. 때로는 오일을 묽게 풀어 납작한 표면을 만들고, 때로는 캔버스 위에 물감 튜브를 짜내듯 입체감을 드러낸다. 이 단순해 보이는 행위는 회화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감각적, 정신적 차원을 동시에 자극한다.
국대호의 색은 도시의 풍경을 기억하게 하되, 구체적 장소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울의 낯선 풍경, 로마의 어스름한 골목, 첼시의 빛 번진 간판처럼 한때 시선을 훔친 장면들이 색으로 추상화된 흔적이다. 마치 오래된 사진의 초점 밖에서 느껴지는 보케(Bokeh)처럼, 그의 회화는 기억의 가장자리를 더듬는다. 색은 풍경을 말하지 않고, 그때의 자신의 감각을 불러온다.
그의 회화는 정제된 언어로서의 색이자, 감각과 사유 사이의 중첩된 공간이다. 즉 이성의 구조와 감각의 해체가 공존하는, 긴장과 질서가 교차하는 자리이다. 이는 미술평론가 홍경한이 말했듯, “병렬하는 공간과 시간의 누적”으로서 존재한다. 국대호의 색은 그저 나열된 선이 아니라, 시간의 결, 기억의 층위이며, 존재의 흔적이다.
국대호는 말한다.
“저는 800만 가지의 색을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강하다.” 그 호기심은 단순한 실험이 아닌, 회화의 본질을 묻는 탐색의 반복이다. 그래서 그가 스트라이프를 긋는 이유는, 색을 통해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충동이며, 그 충동은 오늘도 그의 손끝에서 묵직한 선 하나로 증명된다.
이번 전시는 색이 어떻게 기억을 품고 시공간의 축으로 기능하는지를 증명하는 장면이다. 이것은 감각의 서사이자, 색으로 기록된 한 작가의 시간과 인생이다. 그래서 그의 색은, 그가 기억하는 방식이자 곧 국대호 자신이다.
그렇게 그는 다시, 기억을 긋는다.
-갤러리나우 대표 이순심
[평론]
‘색’을 통한 새로운 관계의 모색, 공간과 시간의 멈춰진 독백
1. 작가 국대호의 근작은 내적동기에 관한 막연한 불가능성과 가능성의 조합이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 뿐, 지시명사를 잉태하지는 않는다. 원색이 지배하는 색과 예민한 구성, 거칠거나 매끈한 마티에르의 가시성에도 불구하고 의도의 명료함은 표상의 불명확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지성에 의한 가상의 구축과 자유로운 감각이 동시에 열람된다.
사진에서의 보케(Bokeh) 효과를 가미한 듯한 그동안의 작업으로 볼 때, 그의 작품에서 목도되는 개념과 감각적 표출은 매우 고의적인데, 이는 병렬하는 공간, 시간의 누적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시공함축의 의미로서 해석 가능한 스트라이프(stripe)는 현상의 일상성에 수용되지 않고 영속적 계기를 논리적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도록 한다.
그의 근작들에서 발견 가능한 흥미로운 지점은 (눈으로도 확연히 파악할 수 있듯) 통일과 체계를 건설하는 이성적 지도와 내외적 감각의 일치가 묘한 질서 아래 놓인다는 데 있다. 일례로 선을 긋는 작가의 행위는 신체성의 규정이자 경험으로, 파악한 대상 혹은 현상을 내화시켜 드러내는 외적감각으로 읽을 수 있다. 그건 달리 말해 정신으로부터의 동기이다. 즉, 정신의 작용이 신체화 되면서 내면감각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작가에게 감각은 정신의 모든 것에서 미끄러지고, 대상을 선택 및 분별하여 이미지화하는 선명한 감성체계는 이성의 운용과 개념의 자기 존재를 부상시킨다. 물론 이 존재는 작가의 행위로 인해 물리적 에너지와 표출의 관계를 생성하며, 내부와 외부, 동기와 결과로 이중화-합일함으로써 시각적 성과로 매듭지어진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여러 작품들, 즉 단순히 색상 줄무늬에 국한될 수 없는 그의 연작들이 바로 그 증거들이다.
물감의 밀도와 속도, 규칙성이 각각인 이 작품들은 응축과 함축의 결을 보유한다. 과거 대비 사실성을 억누른 탓에 인식의 친절도는 낮아졌지만 되레 감각반응은 높아졌다는 특징이 있다. 흔히들 ‘색(色)’부터 말하겠지만, 굳이 순위를 따지자면 필자는 다소 다르다. ‘색’ 너머의 가치, 단순성을 통한 현실 너머의 세계로 유도하는 길이 먼저 보이고, 근원성에 보다 무게가 있음을 읽는다.
2. ‘색’이상의 언어들로 채워져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대호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조형요소는 ‘색’이다. 1990년대 말부터 그는 유독 ‘색’에 천착한 작품들을 발표해 왔는데, 초기의 색채추상에서부터 선과 에너지의 조응이 인상적인 색채드로잉(이 작품들엔 정갈한 격렬함과 힘센 고요가 녹아 있다), 그리고 오늘날 선보이고 있는 컬러라인 작품들 모두 색에 대한 관심이 깊게 반영되어 있다. 심지어 2000년대 중반 선보인 ‘도시 풍경’ 연작에서도 색은 중요한 조형언어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그가 ‘색’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근원성에 대한 도전을 꼽을 수 있다. 시각예술을 말할 때 가장 앞서 언급되는 요소는 점과 선과 면인데, 이 조형요소들은 잔상에 맺힌 3차원을 2차원의 평면에 추상화(化)하는 신조형주의자들에게서 자주 엿보이는 방식이다. 그들은 순수조형의식을 생성하려는 의지로 대상을 점, 선, 면으로 단순화했고, 형태를 해체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국대호도 그렇다. 가장 기본적인 조형요소만으로 사물의 본질(essence)을 드러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을 지닌다. 다만 국대호의 경우 경험적 프레임에 의탁함으로서 자연스럽게 공간과 사물을 포박, 600년 미술사가 고수해온 수학적 태도를 지양했다는 차이는 있다. 인위적인 꾸밈이 아닌 체득의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1990년대 이후 여러 구상적 풍경을 비롯해 묵직한 질감이 시선을 사로잡는 <자작나무> 시리즈, <Jelly Bean> 연작 등, 다양한 형상작업을 펼쳐왔음이 사실이다.
국대호 작가가 ‘색’에 천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설명의 불필요함에 대한 자각이다. 즉, 형상으로 인한 인식의 통제와 제어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방법의 일환으로 선택된 것이 ‘색’이다. ‘색’은 그에게 가장 열린 수단이며 공명의 방안이다. 사유를 확장시키는 촉매다. 과거 일련의 작품에서 살필 수 있었던 구상적 익명성을 더욱 극대화한 장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가에게 ‘색’은 단지 광학적 현상이 아니라 심리적 운용에 가깝다. 물리학에서 색채란 빛 에너지이지만 그에겐 감정의 표현이다. 감각을 통한 색의 도모-이성과 감성의 결합은 그에게 결국 같은 콘텍스트다.
3. ‘색’에 관한 국대호 작가의 지속적인 눈길은 일정한 성과를 담보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는 색채드로잉을 하나의 공간설치작품처럼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2017년 환기미술관에서 있었던 전시에서 작가는 20여 년간 채집한 색의 흔적들(컬러필드) 230여개를 화이트큐브에 집대성했다. 색을 통한 공간과 색, 회화와 설치, 개별과 합이라는 전시의도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야말로 ‘국대호의 색·채·집’이라는 전시제목과 효과적으로 맞닿았다.
국대호 작가의 스트라이프 작품은 본 글에서 몇 차례 강조한 ‘병렬하는 공간과 시간의 누적’이 담긴 것이었다. 언뜻 색의 분할이자 질료의 질서였지만 층위를 달리한 채 사물과 현상을 투사한 것이면서 동시에 시간의 축을 걸어놓은 것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이 작품들이 국대호 작업의 향후 변화를 알리는 나침반과 같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작품 자체는 자신의 이성과 감각으로 끌어 올린 미의식의 적절한 발현이라 해도 그르지 않으나, 세상 수많은 사물과 현상들(그것이 풍경이든 관념적 대상이든)이 하나로 포개지며 원래 실체를 알 수 없는 추상화로 전이됨으로서, 시공에 놓인 고유한 정체성을 ‘새로운 관계’의 선상에 올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눈으로는 확인 불가능하지만 명료한 한 가지는 있다. 바로 ‘색’으로 ‘색’을 찾는 게 아니라 사물에서 본질을 찾으려는 철학이 이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색’은 그저 그 근원에 대한 탐구의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를 공간과 시간의 멈춰진 독백이라 부른다. 얼마 전 작업실에서 접한 그의 근작들은 내게 그렇게 말을 걸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작가노트]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들은 엄연히 말하자면 2004년에서 2006년까지 진행했던 스트라이프 작업의 시즌 2이다. 추상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색을 주제로 끊임없이 작업해 온 나는 색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표현들을 지속해왔다.
과연 나는 왜 그런 컬러들을 지속적으로 표현해왔는가 하는 문제 제기를 스스로에게 해본다.
스트라이프 초기 작업에서는 색과 색이 수직적 형태로 만나 이루어 내는 강렬한 발산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각각의 색채가 만나 생성된 그 경계는 미묘하고도 다양한 색의 변조로, 이질적 세계가 생생한 역동성을 느끼게 하였다.
이번 스트라이프 작업이 그전의 작업에서 변화한 점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첫째는 색채에 질감을 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로는 오일 물감을 묽게 만들어 플랫한 표면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캔버스 위에 튜브를 직접 짜서 긋기도 하며 스퀴지나 여러 가지 다른 도구들을 이용하여 물감 덩어리들의 질감을 서로 다르게 만들어 나간다. 이렇게 물감의 밀도와 속도, 방향의 규칙성을 작품마다 변화무쌍하게 표현해 봄으로써 회화의 본질적인 면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둘째는 나의 작업들에 시공간의 응축과 함축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내 작업은 무수히 많은 컬러들의 조합으로 인해 이뤄지는데 그것은 거의 수평적 형태를 이룬다. 또 그 형태는 직선에 거의 가까우며 시즌 1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기억 속의 풍경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때론 영화나 여행 중 인상 깊게 보았던 풍경이나 어릴 적 서울에 상경해 처음 보았던 이색적인 도시의 색채까지도 문득 떠오르게 할 때가 있다.
지금은 작고한,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요리사 베르나르 로와조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음식은 기억이다 - 어릴 적 산이나 들에서 뛰어놀다가 따먹은 열매의 맛이나 엄마의 정성이 담긴 음식의 맛은 그 후 수십 년이 지나서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고 하였듯이 나에게 그러한 풍경들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으로서 인식되기보다는 특정한 색채로서 대체된다. 이처럼 대체불가능한, 회화 속 색의 본질을 탐구하고 표현하고자 나는 오늘도 캔버스에 색이라는 매개체를 핑계로 기억 속 여행을 떠난다.
-국대호
[약력]
국대호 GUK DAE HO (1967~ )
1992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BFA)
1995 파리 국립 미술학교 회화과 졸업 (MFA)
1998 파리 8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졸업 (MFA)
<주요 개인전>
2025 색, 기억을 긋다 / Memories in Color, 갤러리나우, 서울
2025 “색과결”, 삼원갤러리, 서울
2024 “XAOSMOS”, 갤러리M9, 서울
2023 “Mindscape New York” 갤러리 AUGUT, 뉴욕
“gleam” 갤러리 BK, 서울
2022 노블레스 컬렉션, 서울
“색의 분출” 갤러리 초이, 서울
2021 강동 아트센터, 아트랑, 서울
2018 “최소한의 언어” 갤러리 서화, 서울
2017 환기재단 작가전, 색‧채‧집, 환기미술관, 서울 등 다수
<2&3인전>
2024 선과 색의중첩, (국대호, 하태임, 이상수) 아트코드갤러리, 서울
2022 감각과 본질, (국대호 이상민 임광규 3인전), 갤러리 콜론비, 서울
2019 색. 변주곡, (국대호 김형관 2인전), 서울대학교병원 대한외래 갤러리, 서울
(국대호‧이기숙 2인전) 갤러리 Wave, 부산
2017 2인전 (국대호, 박승모), 아트 스페이스 호서, 서울
2016 3인 회화전(김춘수, 국대호, 김형관), 김세중 기념관, 서울
2015 2인전 (국대호, 유봉상), 갤러리 송아당, 서울
2014 사진과 회화의 동행 (국대호, 주도양 2인전), D갤러리, 대명리조트 비발디파크
1997 2인전 (국대호, 이상민), 파리 한국 문화원, 파리 등 다수
<주요 단체전>
2025 도시예찬, 더 갤러리 호수, 서울
색의 중첩 그리고 변주, 갤러리 반디트라소, 서울
2024 침잠과 역동, 선화랑, 서울
2023 시대의 각인, 갤러리 X2, 서울
숭고한 감정들, 두남재 아트센터, 서울
2022 공명의 순간들, 갤러리 두인, 서울
더 리뷰, 파라다이스 시티, 인천
2020 감각, 본질, 존재전, 이케이 빌딩, 서울
2017 ‘Color Fall’ 천안 예술의전당 미술관, 천안
2016 “틈” UNDER THE SKIN, 갤러리 세줄, 서울
연애의 온도, 서울미술관, 서울
2015 생각하는 빛, 양평군립미술관, 경기도
랜드마크 : 도시의 찬란한 꿈, 63스카이아트 미술관, 서울
유연한 시선, 모란미술관, 마석
2014 색(色)의 언어, 모란미술관, 마석
Between Sense And Sensibility,전, TAKSU갤러리, 싱가포르
Hommage a Whanki ll, 환기미술관, 서울
2013 파사드 부산, 부산 시립미술관, 부산
2011 듀얼이미지 Dual Images, 포항 시립 미술관, 포항
색 x 예술 x 체험 x3, 고양 어울림 미술관, 고양
2010 unique & useful, 인터알리아, 서울
“색과 빛, 그 지점“전, 인터알리아 , 서울
2009 색을 거닐다, 인터알리아 , 서울
원더풀 픽쳐스, 일민미술관, 서울
색 x 예술 x 체험, 고양 어울림 미술관, 고양
2008 Essentielle전, 더 스페이스(코리아 아트센터), 부산
Lead in KOREA, WITH Space, 베이징
아이콘 오브 아시아 - 아시안 컨텐포러리, 이엠아트 갤러리, 베이징
돌아와요 부산항에전,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등 다수
<작품소장>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 시립미술관, 부산시립 미술관, 경기도 미술관, 미술은행, 대림미술관, 광주 시립미술관, Croix St-Simon 병원(파리), 외교통상부, 서울대학교, JTBC사옥, 환기 미술관, 비트리 시립미술관(프랑스), (주)페리에 쥬에(프랑스), 63스카이아트 미술관, 메리어트 여의도 파크센터, 수원 아이파크 미술관, 시공사, 양평 군립미술관, 한독약품, 광주 유∙스퀘어 문화관, 비발디 파크, 쉐라톤인천호텔,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서울 동부 지방법원, 샤또 드 클리낭시(프랑스), 파라다이스 시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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